스포일러 주의 바랍니다. -_-;; 꾸벅.

이런 느낌의 포스터! 우리나라 영화도 어떻게 좀... -_-;;
일반적인 상업영화와는 다르게 특별한 고저 없이 그냥 그렇게 툭툭 진행되는 영화.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어느새 코를 훌쩍이며 눈물이 찡하고 도는 것이었다! 젠장.
눈물의 정체는, 감동이라기 보단 묘한 슬픔과 한편의 쪽팔림. 자기연민. 젠장젠장.
이 영화는
학생 대부분이 흑인인 브루클린의 한 중학교 역사교사 댄과
(물론 이상주의자에 백인, 나름 훈남형 -_-)
그의 제자인 13살의 흑인소녀 드레이(안타깝게도 미소녀 아님 -_-)의 이야기이다.
여기까지 보면 느낌이 빡 오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열정에 불타는 젊은 선생이 비뚤어지기 일보 직전인 흑인 소녀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이야기?
쪼금 더 나가신 분들은 혹시 백인 선생과 흑인 제자의 금단 므흣 로맨스를 예상하시려나? ㅋ
그런 거 없다. -_-
음... 그런 시도들이 아주 조금씩은 있는데, 택도 없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니 현실적이다.
그런 것들이 다 얄팍한 환상이라는 걸 보여주고 처참하게 하나씩 깨부숴주신다.
그런 환상들이 오히려 주인공의 비참함과 힘없음을 드러내고 돋보이게 만들 뿐인데.
그렇다! 이 영화는 비참함과 무력함에 대한 이야기 되시겠다.
영화는 사실 흑인 소녀 드레이보다 백인 교사인 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댄은 한국에서도 차고 넘치게 많은 전형적인 찌질 학삐리 캐릭터.
머리에 먹물 좀 찬 상태에서
이 사회 안에서 옳은 일을 행하며 열정과 숨가쁨을 느끼고 싶다는 드높은 이상을 지녔지만
이것은 그저 이상일 뿐. 단단한 현실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거대한 부조리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전형적인 학삐리 변명을 품고
자괴감과 무력감에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그런 젊은이가 바로 댄이다.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맞아서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려 노력하지만
퇴근해서는 새파란 시절부터 버릇처럼 손대왔던 마약이나 먹어주고 술먹고 담배피고 여자꼬시고.
여자를 꼬시고 나서는 다시 학삐리 근성이 삐져나와 택도 없는 이상론과 그에 대한 좌절을 주절주절.
이렇게 잘난 척하다 딱지맞고 혼자 집에 오면 그저 고양이 한 마리.
고양이 밥주고 쓰다듬다가 또 술먹고 담배피고 밤늦게 잠에 드는 댄.
어느 날, 과거 애인이 결혼한다는 얘기에 상처입고 밤늦은 학교 체육관 화장실에서
저질마약 한대 빨아주시다가 몸이 제대로 말을 안듣는 지경까지 이르고,
이 꼬라지를 자기 학생인 드레이에게 걸려버리는 쪽팔린 사건으로부터 이야기가 굴러간다.
학생선도의 판타지는 벌써 산산히 부수고 나서 판을 시작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누굴 돕는단 말인가?;;;
화장실 바닥에 드러누워 제자의 손을 부여잡고
잠시만 같이 있어 달라고 중얼중얼 부탁하는 교사의 모습이라니.;;;
아아. 쪽팔리고 괴로운 시작이다.
찌질한 학삐리가 세상에 나와 세상이란 괴물과 부딪힐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실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주된 정서였던 것이다.
영화 중반부의 한 장면.
아마도 과거 대학시절, 서로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열정적으로 사랑과 떡을 나눴을 X애인이
결혼을 한다고 말하며 '건실하고 정상적인' 사회인의 길로 들어서는 모습 앞에서
댄은 칭얼거린다.
댄 : ...운 좋은 사내는 누구야?
X여친 : 재활치료 중에 만났어 ...잘 모르겠어, 댄.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변하기도 하니까.
댄 : 난 아냐.
X여친 : 알아.
댄 : 난 여전히 머저리(asshole)야.
X여친 : 아냐 ...넌 커다란 아기(just big baby)일 뿐이야
댄 : ...난 커다란 머저리 아기(big asshole baby)야.
...아! 찌질해! -_-;; 아! 쪽팔려!!!
나만 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 현실에 부대끼면서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
그리고 스스로 아직 이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얄팍한 자존심이 뒤섞인 이
꼬라지라니.
세상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이건 간에 서른 살을 넘긴다는 게, 아기에서 어른이 된다는 게
이다지도 힘든 일인가보다.;;
언젠가 읽었던 정미경의 소설 한구절이 갑자기 떠오른다.
조잡한 픽션이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으니.
나 누구에게도, 한 번도 붉은 꽃이었던 적 없으니.
여태 살았는데 아직도 서른이라니. 이처럼 칙칙한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기묘하게도 영화는 중간중간 학생들의 수업발표를 빌어
미국 역사 안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투쟁의 역사들을 줄줄 읊어준다. 인권, 인종, 동성애...
이 가슴설레이는 순간들을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은 서서히 썩어가는 댄.
역사는 대립과 투쟁으로 만들어진다고 변증법을 설파하면서도
세상과 대립하는 것에 지치고 좌절한 젊은이.
학생들이 맑은 눈망울로 발표하는 이 투쟁의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을 씹으며
댄은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누구와 대립하고 있는가? 날 몰아대고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댄이 수업시간중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영상.
자유언론 운동(Free Speech Movement)의 지도자 마리오 새비오(Mario Savio)의
'기계' (Machine)에 대한 명연설이다.
(미국 좌파 밴드 'Rage Against The Machine'이 바로 이 연설에서 이름을 따왔다. -_-)
기계의 작동이 너무 불쾌해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
여러분은 지켜보면 안됩니다!
수동적으로도 지켜보면 안되고
여러분의 몸을 기어와 바퀴에 던지고, 레버에 던지고,
모든 부속 위에 던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걸 멈추게 하고
기계를 잘 돌릴 수 있는 사람과
기계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을 직접 지목해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절대로 기계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댄이 학생들에게 묻는다.
기계가 뭘 뜻할까?
우릴 누르고 있다는데, 그게 뭐야?
뭐가 우릴 자유롭지 못하게 할까?
내가 보기엔 바로 이것이 이 영화의 화두다.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왜 이다지도 힘들고 갑갑하고 괴로운지.
이렇게 나를 좌절시키는 적은 과연 누구인지.
그것은 단순히 자본주의, 정부, 사회, 권력자, 가부장적 가족제도, 사회적 통념들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는 미묘한 지점을 포함하고 있다.
'기계'는 당연히 외부에도 존재하고, 또한 우리의 내부 안에도 존재하는 '무엇'이다.
개인과 사회의 대립. 그 관계 속에서 무엇인가 갈려나가고 어긋나 부러지는 소리.
이 영화는 전형적인 학삐리를 내세우고는
그 미묘하고도 불편한 소리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질문을 던진 후, 댄과 학생들의 대화를 함 엿들어 보자.
댄 : 그게 뭐지?
학생 : 감옥이요.
댄 : 그래, 그래. 감옥, 그렇지? 감옥도 그 중에 하나야. 다른 건?
학생 : 백인.
댄 : 백인도 맞는 말이지.
학생 : 학교요.
댄 : 학교, 맞았어. 모든 교육 체제가 기계의 일부이지. ...또 다른 건?
학생 : ...그럼 선생님도 기계인가요?
댄 : ...오, 그런 말을 하다니. 뭐라고 했지?
학생 : 선생님도 기계냐구요?
댄 : 내가 기계냐고?
학생 : 백인이시고, 학교에 속해 있잖아요
댄 :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군. 그래, 나도 기계의 일부야.
하지만 내가 그렇다면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너희 모두도... 이게 요점이야.
모든 건 반대세력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가 기계에 대항하면서도...
우린 상당 부분 그 기계의 일부이지.
이런 감정들. 뭔가 딱딱한 단어들로 풀어놔서 그렇지 우리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감성 아니던가.
뭐 꼭 거창하게 사회와 나의 부딪힘을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건 일상에서 소소하고 자잘하게 널려있는걸.
예를 들어, 난 특히 부모님들을 만날 때마다
미묘하게 내 속에서 뭔가 갈리고 으스러지는 소리를 듣는다.
굳이 말로 풀어내시지 않아도 흘러들어오는 부모님의 바람. 은근한 기대와 압박.
부모님 앞에서 떳떳하고 싶은 마음. 뭐 다 나 잘되길 바라시는 마음인데...
하지만 나의 이상과, 나의 삶은 어떻게 하고?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부를 손에 넣어서 부모님을 만족시켜 드리고도 싶다.
하지만 그걸 위한 길을 억지로 걸어가고 싶진 않아.
어느 순간 느끼는 슬픈 사실은, 가고 싶다고 해도 이젠 못 걸어갈 길이라는 것.;;;
굳이 말로 풀어내시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부모님의 포기. 그럼에도 남은 은근한 기대와 압박.
반복, 반복, 반복.
그리고 문득. 난 그저 허영심에 차고 몸만 큰, 머저리 아기(big asshole baby)인 걸까?
부모님과 사회가 바라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버린 걸까?
사회도 가족도 부모님도 내 목을 조르는 '기계'.
또 나도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나 스스로에게 '기계'일수밖에 없구나...
...젠장.
이 영화의 제목.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
Half Nelson. 사전 한번 뒤져주시면.
운동·오락>
레슬링에서, 한 팔을 상대편의 뒤에서 겨드랑이 밑으로 넣고, 뒤통수에 팔을 돌려 목을 조르는 공격 기술.이야아. 제목 한번 기똥차구나. ㅠ_ㅠ
어쨌든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댄은 후반부로 갈수록 머리도 엉키고 삶도 엉키며 무너져 간다.
그것을 바라보는 흑인소녀의 삶도 썩 밝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삶은 언제나 그렇듯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무심하다.
음... 개인적으로, 댄의 좌절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어느날 아침, 그가 기르는 고양이가 이유도 없이 죽어버린 장면이었다.
고양이 밥그릇에 먹이를 붓고,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는 댄.
하지만 고양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리고, 소파 뒤 쪽으로 보이는 고양이의 뒷통수. 움직이지 않는 모습.
어찌 보면 유일하게 댄이 마음을 열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존재가 바로 고양이였다.
아무런 이유도 예고도 없이 다가온 이 죽음에 댄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울지도 못한다.
증말 이 장면에서 쪽팔리게도 눈가가 뜨거워지는데. 아오.
이후 댄이 마구 망가질 때, 텅빈 그의 집을 보여주는 장면과 그 속에 섞여있는
빈 고양이 밥통. 이 감정적 연결고리는 정말 이 영화의 백미!
결국 댄은 자신의 추하고 지친 모습을, 지금까지 숨겨왔던 곪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드레이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그 아프고 비루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훨씬 더 강렬하고 슬프게 말이다.
자기 스스로도 추스리기 힘든 소녀이지만, 그녀는 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미약하고도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손길. 하지만 찡하다.
두 사람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썰렁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허탈하게 웃어버리는 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마지막 이미지다.
젠장, 아무 것도 해결 된 것 없는데, 세상은 그대로고 인간도 그대로인데
왜 이 정도면 됐다고 느껴지는 걸까나?
내가 젤로 좋아하는 이육사의 시 '절정'.
절정(絶頂) -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가 보다
관조와 웃음.
왠지 비슷한 느낌 아닐까나?
억지로라도 끼워맞추자면, 나한테 이 영화는 이런 느낌이었다.
어찌 할 수도 없이, 갈 데 까지 갈 수 밖에 없지만
그 끝의 깨우침은 바로 이것이다. 관조와 그 뒤의 웃음.
이 영화는
'전투'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패배'에 대한 영화다.
싸우고 있는 젊은이가 아니라, 이미 져버린 젊은이를 다루고 있다.
요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져야 하는가의 문제.
끊임없이 무릎꿇고 좌절하고 패배하는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똑바로 직시한 이후에야
무언가, 그것이 뭐가 되더라도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이다.
어찌 보면
끊임없이 상처입고 지는 것이야 말로, 내 목을 지금도 조르고 있는
'
기계'와의 전투가 아닐까.
이 영화는 그런
'전투'에 대한 영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났던 이유.
눈물의 정체는, 감동이라기 보단 묘한 슬픔과 한편의 쪽팔림. 자기연민. 젠장젠장.
바로 영화 속 댄의 모습이 내 모습과 자꾸 겹쳐졌기 때문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찌질 얄팍 학삐리니깐.
사는 게 팍팍하다고 변명하고 투덜대고 화내는 내 모습이
불쌍하고 가련하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ㅋㅋㅋ;;;
여기서 또 한번 얼토당토 않게 붙이는 윤동주의 시 하나로 두서없는 감상은 마무리.
또 다른 고향(故鄕) - 윤동주
故鄕(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宇宙(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풍화작용)하는
白骨(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고향)에 가자
PS.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낀 건데, 이 영화. 홍상수의 영화와 왠지 비슷하다. -_-;;
우리 나라에서 유일무이하게, 그리고 탁월한 솜씨로
찌질한 학삐리를 그려내 주는 것이 바로 홍감독 아니던가.
특히나 홍상수의 영화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부분.
댄이 평소에 서로 '떡'을 나누며 감정을 싹틔우고 있었던 여선생의 집에 술이 취한 채 찾아간다.
시간은 새벽 2시 30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한번만 '달라고'
그 여선생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댄. 소파로 밀어붙이고.
그 순간, 역시나 여선생의 펀치에 얼굴을 맞고 '떡'에 실패한다.
화가 나서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군 여선생.
댄. 그 앞에서 문에 기대고 서서, 찌질댄다. -_-;;
댄 : (상처를 감싸쥐고) 어떻게 한거야? ...나도 모르겠다.
아무 대답 없다.
댄 : 어쨌든 마음 쓰지 마. ...마음 무거울 필요 없어. 난 다 이해하니까.
아무 대답 없다.;;
댄 : ...내일 만날 수 있을까?
아무 대답 없다.;;;;
댄 : 안 만나도 그만이야.
아무 대답 없다. ㅠ_ㅠ
댄 : ...내가 갈 바를 정말 모르겠어. 지금 너무 엉망이야.
아무 대답 없다. ㅠ_ㅠ;;
댄 : ...널 정말 좋아했다는 것만 알아줘.
아무 대답 없다. ㅠ_ㅠ;;;;
댄 : 즐거웠어.
역시 아무 대답... -_-;;;
댄 : 오늘밤은 아니었지만, ...다른 날은 즐거웠었어.
대답 없음...-_-
댄 : 우리 즐거웠었지?
묵묵무답...-_-
댄 : 피가 나서 팔걸이 덮개를 썼어. ...빨아줄게, 알았지?
조용. -_-
댄 : ...미안해.
으아, 상수형! 언제 미국 갔나? 이거 이 부분 형이 대사 쓴 거야
? ㅋㅋㅋ;;;